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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3 - 2020. 8. 9
본다. GAZE
이미지는 이미 세계 안에 다 스며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억지로 풍경을 구부리려고 하지 말고
풍경 속에서 발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최소의 발견> 중 <본다>, 이원

강강훈, <One's growth-Cobalt Blue>, Oil on canvas, 227.3x181.8cm, 2017
지난해 도서 베스트셀러는 에세이를 필두로 인간관계, 자존감, 자아, 인생 등에 관한 주제를 다룬 도서들로 구성되었다. 이는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개성적인 가치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뮤지엄그라운드의 2020년 첫 기획전인 <본다. Gaze>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투영하여 작품 감상에 대한 새로운 공감과 사유의 장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전시는 '강강훈, 박지혜, 이흠' 3인의 극사실주의 작가와 '북 크리에이터 공백'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강강훈, <Untitled>, Oil on canvas, 282.8x282.8cm, 2019
강강훈은 딸을 주 모티프로 파생되는 감정과 함께 색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화폭에 옮겼다. 이 작품들의 메시지는 '감정'과 '색'에 관한 폭넓은 연구와 딸의 성장과정 속의 찰나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작가의 남다른 부성애와 세심한 기록을 위한 사유에서 시작된다. 캔버스로 구현되는 딸의 모습과 함께 핵심적인 색과 뿌려진 물감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며 모든 것은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끊임없이 변한다.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만, 잡히지 않을 법한 부분들은 연출과정에서
뿌리거나 바르는 추상적 행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작품 속의 파란색은 작가를 대변하는 색이자 동경의 의미를 품고 있다. 파란색과 함께 이번 시리즈에서 많이 쓰이는 핑크색은 딸이 성장하며 핑크를 좋아하게 된 연유와 그 변화를 담고자 했다. 이 두 색의 교차 속에서 실재 이상의 감동을 주기 위한 작가의 노력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포토리얼리즘으로도 불리는 극사실주의의 사조를 작가 본연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치밀한 연출과 동시에 추상과 재현의 가도를 달리며 실재 이상의 느낌을 이번 전시에서 전달하고자 한다.

박지혜의 작품은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성장 배경과 성격에 기반한 사고방식의 토대를 갖는다. 때문에 하나의 동일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각자의 사고방식에 따라 다양한 평가와 가치판단을 내린다. 타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한 순간이 자신에게는 '뇌리에 꽂히는 경험'은 이러한 다양한 사고방식과 개성에 기반한 것이다. 작가는 이 순간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특히 얼굴을 알 수 없는, 가녀린 신체를 가진 여성의 뒷모습은 작가의 시선을 붙잡는 중요한 모티프이다. 뒷모습 안에서 드러나는 신체의 동세, 남성의 것보다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섬세한 근육과 골격구조를 관찰하고 표현한다. 피사체의 얼굴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몸이 보여주는 동적인 표정에 집중할 수 있고, 이는 작품 의도에 대한 공감을 극대화 하는 방법이다.
박지혜, <Regard_1002>, Oil on canvas, 162.2x112.1cm, 2010

작가의 작품은 푼크툼으로 시작해 푼크툼으로 끝난다. 최초의 푼크툼이 일상 속에서 작가의 시선에 따라 뇌리에 남겨져 작품으로 완성된 순간들이었다면, 최후의 푼크툼은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는 관람객의 몫이다. 관람객의 시선과 배경에 따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친구가 될 수도, 사랑하는 이가 될 수도, 그리워하는 이가 될 수도, 혹은 온전한 타인이 될 수도 있다. 박지혜의 작품은 이렇게 작가와 작품, 관람객 사이의 유기적이고 능동적인 시선 교차를 유도하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을 통해 작가가 최초로 느꼈던 시선을 공감하길 바라며, 나아가 관람객의 개성을 담아 각자만의 시선으로 완성되는 '상호적인 작품'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흠은 케이크와 사탕이라는 달콤하고 감각적인 소재를 통해 예술을 담아낸다. 우리의 삶 속에는 겉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그 실체는 정작 보이는 모습과 다른 사연과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화려해보이지만 결국 모두가 비슷하게 살아간다. 작가는 쇼윈도를 통해 예술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쇼윈도라는 창에서 상품을 꺼내기만 해도 케이크를 돋보이게 만드는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본질만 남겨진다. 관심받기 위해 최상의 상태로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오브제에 의미를 넣고 가치를 부여하는 하나의 예술과도 같다. 우리가 예술을 하고 있는 행위들, 21세기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들을 모두 이 쇼윈도에 담아 표현한다.

작가는 예술 세계에서 가장 등한시하고 천시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주제를 풀어낸다. 사람들의 삶과 죽음, 성, 소위 고차원적으로 수없이 인용되는 주제가 아닌 가장 현대적이고 자본적인 부분을 예술의 세계로 들여온다. 아름답게 포장된 오색찬란한 케이크와 사탕은 현재 우리 삶의 이면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재탄생되고 있다.
사실주의, 곧 재현의 회화는 사진의 발명 이전까지 미술 장르의 핵심 키워드였다. 1839년 최초의 사진기 '다게레오타입'의 발명과 함께 미술은 사실적으로 그려야 할 권리를 사진에 의해 박탈 당했다. 때문에 미술의 표현 주제가 형이상학적 부분으로 변화했으며, 20세기 추상화 장르가 미술계의 주류로 올라선 이후 20세기 중반 팝 아트(Pop Art)의 등장 이전까지 미술은 대중으로부터 상당히 유리되고 말았다. 극사실주의 역시 팝아트의 등장 목적과 같이 미술의 과도한 엄숙성, 추상미술의 내면탐구-자기부정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대중에게 미술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극사실주의의 꼬리에는 이러한 물음이 동반된다. "사진을 찍어 인화하는 것이 더 손쉬운 방법이지 않나?" 라는 근본적인 물음. 하지만 극사실주의에는 사진이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의의가 있다. 카메라 렌즈로부터 물리적으로 발생하는 필연적인 공간과 색감의 왜곡을 배제한채 해당 피사체를 객관적으로 그려내 순수한 이데아(Idea)에 닿으려는 노력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3명의 작가 역시도 극사실주의의 기조에 맞춰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그려낸다. 해당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와 작품의 의도 자체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표현방식은 순수한 객관성을 띤다. 이러한 객관성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자신의 삶을 투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에 더해 전시 작품들을 감성적으로 관통하는 시어, 문학 작품의 문구를 병렬 배치하여 관람객의 개인적 사유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지극히 객관적인 외형을 가진 작품 앞에서 온전히 개인의 생각과 경험을 담아 작품을, 전시를, 이 공간을 내 개인의 것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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